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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경제학자 탐구] 데이비드 리카도_Part 1 본문

경제/경제인물 소개

[데일리 경제학자 탐구] 데이비드 리카도_Part 1

DataHolic26 2020. 6. 13. 15:28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 ~ 1823

이번 글의 내용은 "한 권으로 끝내는 경제학 명저 50" 책과 '경제배움e' 네이버 포스트'를 정리 및 참조하였음을 먼저 밝힙니다.

 

그럼 시작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영국의 경제학자, 유대인계 영국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남

※ 영국 하원의원 역임

 

1799년 A.스미스의 《국부론 Wealth of Nations》을 읽게 되면서부터 경제학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논쟁( 1809∼1812) 때 잉글랜드은행의 통화정책을 비판함으로써 지금주의자에게 이론적 바탕을 제공하였다. 곡물조례 논쟁(1813∼1815) 때에는 산업자본가 계급의 입장에서 지주적(地主的)인 곡물조례에 반대하는 등 실천적인 면에서 활동하였다. 리카도는 고전학파의 창시자인 스미스 이론을 계승·발전시켜 고전학파의 완성자로 알려져 있다. 1817년 노동가치설에서 출발, 분배론(分配論)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주저인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를 발표하였다.

출처: 네이버 사전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영국의 고전학파 경제학자라고 합니다. 그는 유대인 상인 & 주식 중개인(브로커)로 종사하던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14세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아 21세이 독립중개인이 되었고 이후에 그는 영국 굴지의 증권업자가 되었습니다.

 

리카도는 19세기 초에 나폴레옹 전쟁이 발발했을 때 영국 정부의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하였고, 이는 위험 부담이 컷기 때문에 도박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영국 정부의 국채는 영국이 패전국으로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 국채는 종이 쓰레기가 때문입니다. 참고로 리카도는 세계 최고 금융재벌가인 로스차일드 가문에 버금가는 액수의 국채를 샀습니다.

 

우려와 다르게 리카도의 예상대로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그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42세 이른 나이에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1819년 리카도는 영국의 하원의원이 되었습니다.

 

리카도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다 신기한 점을 찾았는데 그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대학을 나온다고 지식이 비약적으로 남들보다 뛰어나지거나 혹은 정보의 폭이 더 넓어지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위의 의견의 저의 개인적 소견이니 무조건 맞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여러 학문 접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있는데, 이러한 기회 없이 데이비드 리카도는 경제학의 역사 및 이론을 발전시킨 것이 참으로 경이롭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하원의원이 된 리카도는 곡물법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곡물법은 값싼 외국산 곡물 수입을 제한하자는 아이디어 입니다. 이 법안은 암암리에 의회의 다수였던 지주들이 암약하고 있었습니다. 리카도는 의원이 되기 전 1815년 [떨어진 곡물값이 자본 이윤에 미치는 영향]을 간행하고 "지주계급의 이익은 다른 계급의 이익과 대립한다" 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주들의 암약에 맞서기 시작했습니다. 리카도의 주장에 따르면 지가가 상승하면 사회 전체의 이윤이 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Part 2_(2편)에서 내용을 계속 이어 가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