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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일 경제공부

[Daily 경제분석] 튤립 버블 사건

DataHolic26 2020. 8. 7. 00:36

튤립 버블 당시 튤립 가격 추이(1636~1637년도 기준 가격)

 

튤립 버블(Tulip Bubble)이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에 대한 투기적인 사건으로, 역사상 최초의 자본주의적 투기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튤립은 1630년대에 수입되기 시작했으며, 당시 네덜란드는 작물산업의 호황과 동인도 회사의 수익으로 인해 유럽에서 가장 높은 1인당 국민소득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부에 대한 개인들의 과시욕이 높아졌고,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것이 바로 터키에서 가져온 튤립이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의 상류층은 튤립을 자신들만의 독특한 징표로 삼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 귀족과 평민 사이에서도 모방소비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튤립을 단기간에 재배를 늘리기 어려운 상품이었기에 결국은 품귀현상이 생겨 투기적인 수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튤립은 씨앗에서 육성하는 방법과 모근에서 복제하는 방법이 있는데, 씨앗에서 육성하는 경우 꽃을 피우기까지 3~7년 정도가 소요되는 반면에, 모근에서 복제한 구근은 그 해에 바로 꽃이 피기 때문에 구근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였습니다. 튤립의 인기는 튤립 구근의 사재기 현상으로 이어졌으며, 꽃이 피지 않았는데도 '미래의 어느 시점을 정해 특정 가격에 매매한다.' 라는 계약을 사고파는 이른바 '선물거래(Futures Contract)까지 등장하였습니다.

 

 

 

 

튤립시장은 전문가와 생산자 중심으로 거래가 형성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당시 귀족과 신흥 부자를 비롯해 일반인 사이에서도 튤립 투기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면서 튤립가격이 1개월 만에 50배나 상승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17세기 당시 네덜란드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200~400길더(Guilder)수준 이었는데, 1636년 가장 비싼 'Semper Augustus(아우구스투스 제왕)'이라는 최고급품은 구근 하나에 3천 길더나 했고, 튤립의 인기가 정점에 달한 1637년 2월에는 뿌리 하나가 8만 7천 유로(약 1억 6천만원)까지 치솟았습니다. 튤립은 숙련된 장인이 버는 연간 소득의 10배보다 더 높은 값으로 팔려 나갔는데, 튤립 하나면 왕이 부럽지 않다는 의미로 '구근 왕자'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튤립버블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는 튤립 뿌리 하나가 대저택의 가격과 맞먹기도 하였습니다.

 


 

선술집에서 튤립 거래 현장

 

※ 문제는 튤립파동으로 선물거래까지 등장했으나 정식 증권거래소가 아닌 주로 술집에서 거래되었다는 것입니다.

 

튤립의 선물거래에서는 현금이나 현물인 튤립의 구근은 필요 없이 가축이나 가구 등 환금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통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튤립의 품종 개량으로 인해 값이 싼 품종이 시장에 등장했지만, 농민들까지 튤립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값이 싼 품종도 가격이 급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튤립의 가격 상승으로 본래의 구매자인 식물애호가들이 더 이상 튤립을 구매하지 않게 되었고, 특히 서민들이 거래하고 있었던 튤립 구근은 애호가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 실제 거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법원에서 튤립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오자 튤립의 가격은 순식간에 폭락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튤립 매매에 쓰인 어음은 부도가 나고, 지불을 할 수 없는 채무자로 인해 네덜란드 각 도시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 오늘도 쉽고 재밌게 경제 분석을 통해 '튤립 버블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